순교자현양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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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코스 : 말씀의 길

총 거리: 8.1km
소요 시간: 3시간 40분

한국 천주교의 시작은 어땠을까?

‘말씀의 길’을 따르다 보면 이 질문의 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이 길은 한국 최초의 증거자로 기록된 ‘김범우의 집 터’와 천주교 세례식이 거행된 ‘이벽의 집 터’를 둘러보며 시작하는 길입니다. ‘말씀의 길’은 한국 천주교회가 전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자발적으로 복음 말씀을 받아들인 평신도 공동체라는 의미를 되새기며 붙여진 이름입니다. 또한 한국 천주교회 최초의 외국인 선교사인 ‘주문모 신부’가 성수로 사용했다고 전해지는 석정보름우물과 그의 활동지로 알려진 계동 일대의 가회동성당을 둘러보며, 타지에서 순교를 택한 그의 희생은 어떤 의미인지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순교성지
① 명동대성당
명동대성당은 서울대교구의 주교좌로 한국 천주교회의 상징이자 심장과 같은 곳입니다. 1898년에 지어진 이 아름다운 성당은 한국 천주교회가 완전한 신앙의 자유를 얻었음을 상징하는 장소로 한국 천주교회 공동체가 처음으로 탄생한 곳입니다. 명동대성당의 지하 성당 묘역은 순교자들의 유해를 모시기 위해 설계 때부터 계획된 시설로서, 각지에서 발굴된 순교자들의 유해가 1900년부터 이곳으로 옮겨져 안치되었습니다. 명동대성당의 지하에는 순교 성인 다섯 분과 순교자 네 분 등 모두 아홉 분의 유해가 모셔져 있습니다.
교회사적지
② 김범우의 집 터 (장악원 터)
김범우의 집은 1784년 말 신앙 집회가 열렸던 곳이며, 김범우는 한국 최초의 천주교 증거자로 기록된 인물입니다. 당시 이곳에서 집회를 열었던 이들을 ‘명례방 공동체’라고 하는데, 1785년 봄 모임이 발각되어 공동체는 와해되었습니다. 끝까지 신앙을 포기하지 않았던 김범우는 충북 단양으로 유배된 후 고문의 후유증으로 1786년 선종하였습니다.
교회사적지
③ 한국 천주교회 창립 터 (이벽의 집 터)
평신도에 의해 자발적으로 최초의 신앙 공동체가 탄생한 이곳은, ‘한국 천주교회 창립 터’로서 의미 있는 장소입니다. 북경에서 한국 최초로 영세를 받고 돌아온 이승훈 베드로는 1784년 초겨울, 수표교 인근 이벽의 집에서 신도들에게 첫 세례식을 거행했습니다. 이에 ‘한국 천주교회 창립 터, 정조 8년(1784년) 겨울, 이 수표교 근처에 있던 이벽의 집에서 한국 천주교회가 설립되었다’는 내용을 담은 표지석을 세웠습니다.
교회사적지
④ 좌포도청 터
좌포도청은 조선시대 한양 및 인근 지역의 방범과 치안을 담당하던 기관이기도 하지만 많은 순교자를 배출한 박해의 역사가 살아있는 장소입니다. 좌포도청은 현재 종로3가 치안센터로 이용되고 있어 최초의 포도청 기능이 일부나마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 깊은 장소입니다.
순례지
⑤ 종로성당(포도청 순교자 현양관)
종로성당은 좌·우포도청이 위치했던 지역을 관할하는 성당으로 2013년 2월 ‘포도청 순례지 성당’으로 지정되었습니다. 포도청 순교지는 103위 성인 중 최경환 프란치스코, 유대철 베드로, 허협 바오로 등 스물두 분, 124위 복자 중 윤유일 바오로 등 5위가 장살, 옥사, 교수 등으로 순교한 곳입니다. 종로성당 내에 있는 순교자 현양관은 포도청(옥터) 순교자들의 신앙을 통해 한국 천주교회의 역사적인 사건과 의미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순교성지
⑥ 광희문 성지
광희문은 1396년 한양 도성을 창건할 때 세운 서울의 4대문 사이에 위치한 4소문 중의 하나입니다. 서소문과 함께 한양 도성 안에서 사망한 사람들의 시신을 도성 밖으로 내보내는 문으로 사용되어 시구문(屍軀門)으로도 불렸는데, 광희문 밖은 수많은 성인·복자들과 무명의 순교자들이 묻히고 버려졌던 곳입니다. 단순히 조선의 죄수와 무연고자들의 시신이 방치되었던 곳이 아닌 순교자들의 주검과 피를 통해 성화(聖化)된 중요한 성지라 할 수 있습니다.
순례지
⑦ 가톨릭대학교 성신교정
젊음과 열정이 넘치는 대학로 뒤편, 야트막한 산등성이 위에 한국 천주교회를 이끌어나갈 젊은 신학도들의 요람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1855년에 설립된 한국 최초의 신학교인 배론의 성요셉 신학교를 모태로 발전해 온 가톨릭대학교 성신교정에는 최초의 한국인 사제 김대건 신부의 유해 일부가 모셔져 있습니다.
교회사적지
⑧ 석정보름우물
북촌에 있는 이 오래된 우물은 물맛이 좋아 궁궐에서도 사용하던 곳이라고 합니다. 한국 천주교회 최초의 외국인 선교사인 주문모 신부가 1801년 새남터에서 순교하기 전까지 계동 최인길 마티아 집에 숨어 지내면서 선교활동을 할 당시 이 우물물로 세례를 준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또한 1845년 한국인 최초의 사제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도 이 지역에서의 짧은 사목 기간 동안 이 물을 성수로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순례지
⑨ 가회동 성당
북촌한옥마을이 있는 계동은 한국 천주교회 최초의 외국인 선교사인 주문모 야고보 신부가 첫 미사를 집전한 곳이자 마지막 조선 왕실이 세례를 받은 역사적인 장소입니다. 이 지역의 관할 성당인 가회동 성당은 역사와 지역적 특성을 고려해 사랑채, 대청마루를 가진 한옥과 성당이 들어선 양옥이 어우러진 구조로 되어있습니다. 성당 1층에는 한국 천주교회와 가회동성당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역사 전시실이 마련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