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교자현양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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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코스 : 일치의 길

총 거리: 29.5km
소요 시간: 8시간

서울의 대표적인 순교성지들을 잇는 이 길은 신자들 모두가 순교 신앙을 본받고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자는 취지로 ‘일치의 길’이라고 이름 붙여졌습니다.

한국에서 세 번째로 많은 순교성인을 배출한 당고개 순교성지, 한국 천주교회 최초의 외국인 선교사 주문모 야고보 신부와 한국인 최초의 사제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가 순교한 새남터 순교성지를 지나 한강을 마주합니다. 한강변을 따라가다 보면 많은 국내 외 순례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절두산 순교성지에 다다릅니다. ‘천주교인들이 목 잘려 죽은 곳’이란 의미에서 ‘절두산’이라 명명되었으며, 기념성당 지하에는 순교 성인 27위와 1위 무명 순교자의 유해가 모셔져 있습니다. 10인의 순교자가 수십 년 동안 매장되었던 왜고개 성지를 지나 삼성산 성지로 이어지는 여정을 통해 진정으로 순교자들의 신앙을 본받고 실천하는 모습은 무엇일지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순례지
① 중림동 약현성당
중림동 약현성당은 1891년 11월 9일 명동 본당에서 분할된 서울 시내 두 번째 본당으로, 규모는 명동대성당보다 작지만 한국에서 가장 역사가 오래된 최초의 고딕식 성당입니다. 건축 당시 기술과 재정 부족으로 로마네스크 양식과 고딕 양식을 절충해서 성당의 기본 공간과 형태를 간소하게 갖추어 지어졌지만, 아치형의 간결한 기둥과 둥근 스테인드글라스 창문이 고풍스러운 아름다움을 자랑합니다. 1896년 3월 한국 최초로 사제 서품식이 거행된 역사적인 장소이기도 합니다. 1991년 본당 설정 100주년 기념사업의 하나로 본당 안에 서소문 성지 순례자들을 위한 ‘서소문 순교성지 전시관’을 세웠는데, 기념 성당과 전시실에는 성인들의 유해와 함께 선조들이 사용하던 유품, 교리서와 성서를 비롯한 다양한 교회 출판물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순교성지
② 당고개 순교성지
당고개 순교성지는 한국에서 세 번째로 많은 순교성인을 배출한 순교성지로, 기해박해가 끝날 무렵 1839년 열 명의 남녀 교우들이 장렬히 순교한 곳입니다. 인간이 삶을 살아가며 겪는 풍파에서 든든한 힘이 되어주는 가족과 신앙의 중요성을 느낄 수 있는 당고개 순교성지는 어머니의 성지, 생명의 성지로 불리며, 어머니가 자식을 품에 안듯이 순례자들을 따뜻하게 맞이하고 있습니다.
순교성지
③ 새남터 순교성지
1호선 전철을 타고 용산역을 지나다 보면 커다란 한옥 기와집이 눈에 들어옵니다. 이곳이 바로 순교성지 새남터 기념 성당입니다. 새남터는 조선시대 초기부터 중죄인의 처형장으로 사용되던 곳으로, 1801년 신유박해 때 중국인 주문모 신부가 이곳에서 순교한 뒤, 기해·병오·병인박해를 거치며 김대건 성인을 비롯해 성직자 11명과 교회 지도자 3명이 순교한 곳입니다. 그중 9명의 유해가 새남터 기념관에 안치되어 있습니다. 기념관에서는 순교자들의 이야기를 담은 영상을 비롯해 형구 체험실을 재현해 놓아 천주교회의 슬픈 역사를 생생하게 만나볼 수 있습니다.
순교성지
④ 절두산 순교성지
한강 변에 우뚝 솟은 봉우리의 모양이 누에가 머리를 든 모습을 닮았다 하여 잠두(蠶頭)봉이라 불리던 이곳은 가장 혹독한 박해로 일컬어지는 병인박해 동안 수많은 천주교인들이 머리가 잘려 목숨을 잃었다고 하여 ‘절두산(切頭山)’이란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한국천주교회에서는 1966년 병인박해 순교 100주년을 기념해서 절두산에 기념관을 건축했는데, 기념관에는 성당을 비롯하여 27위 순교 성인과 무명 순교자의 유해가 모셔진 성인 유해실, 그리고 ‘한국천주교순교자박물관’이 있습니다. 박물관에는 교회의 귀중한 사료들과 순교자들의 유품, 형구(刑具) 등 3,500여 점 이상의 유물이 소장되어 있습니다.
순교성지
⑤ 노고산 성지
노고산 성지는 천주교 박해가 시작된 이후, 사형을 당하고 그대로 형장에 내버려진 순교자들의 시신을 신자들이 목숨을 걸고 관가의 눈을 피해 모셨던 곳 가운데 하나로, 여러 처형장과 가까워 많은 순교자들이 임시로 매장되었던 곳입니다. 박 바오로를 비롯한 교우들은 죽음을 무릅쓰고 감시의 눈을 피해 처형 터에 버려진 신자들의 시신을 거둬 마땅한 자리로 유해를 이장하였고, 서강대학교는 순교자들의 숭고한 정신을 기리기 위해 2009년 6월 15일 가브리엘관 앞에 순교 현양비를 봉헌하였습니다.
순례지
⑥ 용산예수성심신학교
용산예수성심신학교의 전신은 1855년 충청도 배론(지금의 충청북도 제천시 봉양읍)에 세워진 한국 최초의 신학교 신학당입니다. 배론 신학교는 1866년 병인박해로 인해 잠시 문을 닫았었으나, 1882년 신앙의 자유가 점차적으로 용인됨에 따라 21명을 페낭 신학교에 유학생으로 파견하는 등 사제 양성을 재개하였습니다. 옛 용산 신학교 성당인 성심 성당은 명동 주교좌성당과 중림동 약현성당을 설계한 코스트 신부가 설계하였습니다. ※ 학생들의 수업으로 인해 평일에는 개방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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⑦ 왜고개 성지
왜고개는 현재 군종교구 주교좌인 국군중앙성당이 자리하고 있는 곳으로 1839년 기해박해 때 군문효수의 형을 받고 순교한 앵베르 주교, 모방 신부와 샤스탕 신부 그리고 1846년 병오박해 때 순교한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 1866년 병인박해 때 서소문 밖 네거리에서 순교한 남종삼 요한, 최형 베드로 그리고 홍봉주 토마스 등이 얼마간 매장되었던 곳입니다. 왜고개는 조선시대 500여 년간 기와와 벽돌을 공급하던 와서가 있던 곳으로, 서울 명동대성당과 중림동 약현성당을 지을 때 사용했던 벽돌도 이곳에서 공급해 주었다고 전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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⑧ 삼성산 성지
삼성산 성지는 기해박해(1839) 때 군문효수의 형을 받고 순교한 조선 제2대 교구장 앵베르 라우렌시오 주교와 모방 베드로 신부, 샤스탕 야고보 신부의 유해가 58년간 안치되었던 곳입니다.